[고양시에 제언한다] 제3탄 - 고양의 핵융합, 분당을 뛰어넘어, 대한민국 1번지로!
문화, 예술, 관광, 전시, AI, 스포츠 6대 메카 고양시로!
청년·노인·주부 일자리 100,000개 프로젝트 구현 도시로!
2026년 03월 02일 [옴부즈맨뉴스]
[제3탄] 덕양을 관광허브로 채색하라!

↑↑ 대한민국옴부즈맨총연맹 상임대표 행정학박사 김형오
ⓒ 옴부즈맨뉴스
본지에서는 6.3 지방자치단체 선거를 앞두고 본사가 소재한 고양시에 대한 발전동력을 행정 전문가인 김형오 행정학 박사로부터 제언하는 기사를 향후 12회에 거쳐 게재하기로 한다.
고양시의 대제 “고양의 핵융합, 분당을 뛰어넘어, 대한민국 1번지로!” 부제 “문화, 예술, 관광, 전시, AI, 스포츠 6대 메카 고양시로!, ”청년·노인·주부 일자리 100,000개 프로젝트 구현 도시로!“의 슬로간 아래 오늘은 제1장 【문화·예술·관광 융합도시로 거듭나다】에 제3탄 「덕양을 관광허브로 채색하라!」라는 주문을 싣기로 한다.

↑↑ 6.25 이전 벽제관의 옛모습(사진 = OM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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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벽제관 복원하여 유커를 위한 대형 유스호스텔 건립
벽제관은 1467년 11월 성종 때 건립되었다. 고양동 벽제동 있는 중국의 청·명대 대신들이 조선을 방문하면서 한양을 입성하기 전 이곳 벽제관에서 반드시 1박을 하고 떠난 외교 역마(驛馬)가 있었던 곳이다. 벽제관은 역참(驛站)이나 외교부 산하 관아(官衙)로 오늘날 숙박시설로 국가가 운영하는 공인 호텔로 이해할 수 있다. 이곳에서 갓을 고쳐 쓰고, 마음을 가다듬은 후 외교보따리를 메고 말을 몰아 조선의 조정(朝廷)을 향했던 역관(驛館)이다.

↑↑ 벽제관을 AI가 새롭게 생성한 조감도(사진 = OM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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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제관은 안타깝게도 임진왜란과 6.25를 거치면서 사라졌다. 벽제관 육각정은 일본에서 강탈해 갔다. 그 원형대로 최근에 복원했다. 이제 이곳에 560년 전 벽제관을 복원해야 한다. 이곳에 밀려오는 중국 유커를 위한 대형 유스호스텔을 건립하여 전용 식당, 티 라운지, 한국 문화 체험 공간(K-Pop 댄스, K-푸드, 한복 체험 등)을 완비하여 체류의 질을 높게 운영하므로 관광산업에 크게 이바지 할 것이다.

↑↑ 정주 600년의 고양관아가 고양시 고양동에 공터로 남아 있다. (사진 = OM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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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양관아를 복원하여 고양인의 긍지를 고취하라
고양군은 1413(태종13년) 고봉현과 덕양현을 합쳐 탄생되었다. 금년이 고양탄생 613주년이 되는 해다. 조선시대 초기에 고양관아는 덕양구 통일로변 ‘고읍(고골)’에 있었다. 이후 이 관아가 고양동으로 이전되었고,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모두 소실되고 지금은 사적 제144호 이름표를 단 채 빈터로 남아 있다.
이렇듯 고양은 유서 깊은 역사의 도시다. 이제 이 역사현장을 고증을 통해 복원해야 한다. 이곳에 600년 정주의 역사를 담아야 한다. 그래서 110만 고양시민의 자긍심과 자부심을 일깨워 줘야한다. 그리고 정사(政事)의 현장을 생생하게 재현하고, 관아의 역사를 견학하므로 고도(古都) 고양의 긍지를 고취시켜야 한다.

↑↑ 정주 600년의 고양관아를 AI가 생성한 복원 조감도(사진 = OM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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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근에는 조선시대 숙종(1689년) 때 건립된 고양의 국립 교육기관인 ”고양향교“가 있고, 중남미박물관, 최영장군의 묘 등이 있어 이들과 연계하여 학문·역사 탐방의 관광코스로 복원해야 한다.

↑↑ 여석령(숫돌고개)에 세워진 백제관 전투 전적비(사진 = OM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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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벽제관 전투’ 위령탑·전적비 건립
1593년 임진왜란이 한창일 무렵 우리나라를 돕기 위해 파병한 명나라 이여송 제독이 이끄는 20,000명의 명나라 정예군대가 이곳 여석령(숫돌고개)에서 1593.2.27. 일본군에게 참패를 당한 격전지가 벽제관 전투다. 명나라가 치욕의 패전을 당한 곳이고, 일본군은 4만명이 대승을 거둔 곳이다. 이곳에 중국 명나라 희생군인을 위한 위령탑과 일본인의 대승을 기념하는 전적비(전승비)를 동시에 세워 양국의 관광객을 유치하자는 정책이다.

↑↑ 행주산성이 있는 덕양산 정상에 건립된 행주대첩비(사진 = OM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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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율 장군의 행주대첩 전적비 건립
1593.3.14. 명나라 이여송이 벽제관 전투에서 대패를 당한지 15일 후 일본군은 이 기세를 타고 행주산성 공략에 나섰다. 일본군 30,000명이 7회에 거쳐 공격을 해 왔지만 1593.3.14. 권율 장군은 2300명의 군인으로 일본군에 크게 대승을 거두웠고, 수 백척의 함선 이 서해로 도망을 친 일본인 치욕의 날이다.

↑↑ 행주산성이 있는 덕양산에 건립한 권율장군의 동상(사진 = OM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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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주산성 역사공원에 이 전승비를 세우고, 기념관을 건립하여 군사적 전술의 메카로 자리매김 되어야 한다.

↑↑ 한국 최초의 청자도요지인 원흥동 ‘신라말 고려초’ 청자도요지(사진 = OM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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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최초의 원흥동 청자도요지 복원
청자도요지 하면 강진 대구가 떠오른다. 고려시대 도요지의 가치를 인정받아 1993년 사적 제68호로 지정이 되었고, 1995년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록이 되어 있는 대한민국 대표적인 청자고을로 알려져 있다. 청자 도요지는 주로 해남, 부안 등 남도 해변가 지역에 분포되어 있다.
하지만 놀랍게도 수도권인 고양시 덕양구 원흥동에 이보다 100년이 더 빠른 신라말에서 고려초에 만들어진 청자 가마터가 있다는 사실이 1937 일본인에 의해 발견되었다. 신라말 고려 초기의 것으로 공식 명칭은 ”원흥리신라말·고려초기청자요“다. 1963년도에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64호로 지정되어 있다. 고양시 덕양구 원흥동 산 88번지에 아직도 규모의 3개의 산등성(노보리) 가마터가 그 위엄을 자랑하고 있고, 도자기 파편을 쌓아 둔 50m*70m 넓이의 퇴적더미가 5-6개 현존하고 있다.

↑↑ 3개의 산등성(노보리) 가마터가 그대로 남아 있다.(사진 = OM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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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복원하여 중부권 청자도요지에 대한 가마재료 등 사적 연구와 함께 박물관과 체험장을 건립하고, 이곳에 와서 체험하고 당시 실제 도요지를 견학할 수 있는 학습의 도장과 관광명소로 거듭나야 한다.

↑↑ 신원동 송강의 선영인 송강마을과 정철의 선산이 있다.(사진 = OM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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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강마을 일대를 문학의 산실로 거듭나라!
고양에는 고양시 덕양구 신원리에 ‘송강마을’이 있다. 이 마을 뒷산는 송강정철의 선영이다. 정철은 1593년 이곳 초장지에 묻혔다. 이 선영에는 아버지와 아들, 조카, 손자, 조카 선조 후궁 정인귀, 형 묘소가 이곳에 있다. 특히 의기(애첩) 강아아씨(진옥)의 묘도 이 선산에 있다.
송강은 이곳에서 부친상을 당하고 3년간의 시묘살이를 하며, 말년을 이곳에서 보내며 문산에 사는 율곡 이이와 교류했다. 송강이 돌아가신지 72년만인 1665년 우암 송시열 선생의 천거로 충북 진천군 문백면으로 이장을 했다.

↑↑ 송강의 초장지에 비석만 우두커니 서 있다.(사진 = OM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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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은 평생 4편의 가사와 시조 107수를 합쳐 모두 111편의 작품을 남겼다. 조선시대 가사문학과 시조문학 분야에 최고의 문인이다.
조선시대 가사 문학의 대가인 송강 정철(松江 鄭澈, 1536~1593) 선생을 기리는 유적지와 행사가 외가와 조부 묘가 있는 담양과 묘소가 있는 진천에서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
담양에는 송강정(松江亭), 한국가사문학관, 식영정과 환벽당이 있으며, 전국 가사 문학 학술대회, 경연대회 등이 열리고 있다.
진천에는 묘지가 있고, 위패를 모시는 정송강사(鄭松江祠), 유물전시관, 송강문화창조마을, 송강문화제 등이 있으며, 매년 시조 경창 대회, 백일장, 추모 제례 등의 축제가 열린다.
송강은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본향과 선영은 고양 신원리 송강마을이다. 담양에서 10년 남짓 귀양살이를 하면서 불후의 작품을 남겼지만 역시 외지이고, 진천도 이장지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곳에서는 송강이 살아 숨쉬고 있다.

↑↑ 의기(애첩) 강아아씨 묘(사진 = OM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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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에서는 지역향토문화원에서 20년동안 축제가 이어져 왔으나 이마저도 5년 전 중단을 시켜 송강의 문학정신을 말살시켜 버렸다.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역대 시장들의 문화의식이 이렇게 비천하였다.
고양시는 이제라도 송강마을을 일깨워야 한다. 신원리 송강선산 일대를 문학공원으로 조성하고, 공릉천과 연계하여 111시비거리를 만들며, 송강문학관을 건립하여 전국 문학장르별 백일장과 경창대회 등을 개최해야 한다.
특히 작품 중 ”낚시대 드리우고“ 현장을 재건하고, 율곡 이이와 교류하며 지은 ”권주가“ 속의 율곡집과 주막을 건립하며, 당시 호수를 복원하여 문학도의 휴식공간으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 세계적인 음악가 정트리오-정명훈, 정명화, 정경화 (사진 = OM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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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트리오(정명훈, 정명화, 정경화) 삼성당 생가 복원
정트리오(Chung Trio)는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음악가 3남매로 20세기 클래식 음악계에서 한국의 위상을 드높힌 국보급 음악인 가족이다. 지휘자 정명훈, 바이올리스트 정경화, 첼리스트 정명화가 바로 주인공들이다. 3자매 모두가 최고의 음악 전당 ‘줄리어드’ 출신이다.
이 분들의 고향이 고양시 덕양구 능곡 인근 ‘삼성당’마을이라는 사실을 아는 시민들은 거의 없다. 다행히 생가가 아직도 그대로 존치되어 있다. 현재 정가(鄭家)는 서울을 거쳐 미국에서 거주하고 있다.
동래정씨 조상들이 4-500년을 이어 온 고양 능곡 삼성당이 본향이며 고향이다. 7남매가 주로 이곳에서 태어나 어린시절을 이곳에서 보내거나 찾았다. 아버지, 할아버지 고향이 고양이고, 단지 출생기준이 아니라 어린시절 성장과 거주연고지 기준으로 볼 때 정트리오는 고양인이 맞다. 6.25이후 일찍이 서울로 이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부친 정준채은 한 때 정치에 입문하여 이곳에서 국회의원에 출마하기도 했다.
외할아버지는 독립운동가 양곡 ‘이가순’ 선생으로 일제강점기 고양들판에 한강물을 끌어들여 최초의 수리조합을 만든 고양시 관개(灌漑)의 대부로 숭모되고 있다. 행주산성 고양시수련원 앞에 1950년 세워졌던 숭덕비가 향토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 정트리오의 고향(본향), 고양시 능곡 삼성당의 기와집 생가 모습(사진 = OM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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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훈(1953)은 정트리오 막내로 피아노로 출발하여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적인 지휘자가 되었다. 특히 서울시립교향악단을 10년동안 맡아 세계 수준의 오케스트라로 격상시켰다.
정경화(1948)는 차녀로 바이올리스트다. 정트리오 중 가장 먼저 국제무대에 이름을 떨쳤다. 20세기 후반 최고의 여성바이올리스트 중 한 사람이다. 우리 모두에게 강렬하고 열정적인 연주 스타일로 세계인을 매료시켰다.
정명화(1944)는 장녀로 정트리오 맏이다. 세계적인 콩쿠르에서 계속 입상을 하며 한국 첼로의 개척자가 되었다. 그리고 고국에서 후학 양성에 진력했다.
이런 음악 천재의 본향이 고양에 있다. 자랑스럽고 고양인의 긍지가 넘친다. 정트리오 생가를 복원하고, 박물관을 건립하여 예향의 도시의 면모를 갖추어야 한다.

↑↑ 오스트리아 모차르트의 찰스부르크에 있는 ”모차르트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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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모차르트는 찰스부르크에 ”모차르트생가박물관“있다. 이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이 되어있다.
독일의 베토벤는 본에 ”베토벤하우스“로 박물관 및 연구소로 운영되고 있으며, 같은 독일인 바흐도 고향 아이제나흐에 ”바흐하우스“가 있다.
오스트리아 슈베르트는 빈에 있는 생가에 박물관이 운영되고 있다. 그의 출생 당시 살았던 생가가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위와 같이 당대 음악가들의 생가는 단순한 역사적 고택을 떠나 음악인들에게는 순례지와 같다.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매년 이곳에서 음악축제가 열리고, 세계 음악인과 관광객이 봇물처럼 찾아오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고양시도 정트리오 생가를 복원하고 이곳에 ”정트리오 하우스“를 건립하여 세계적인 음악가 패밀리의 탁월한 선율을 세계만방에 알려야 할 것이다.

↑↑ 고양시 서삼릉에 왕, 황제, 황태자의 태실 22기가 검은색 지석으로 세워져 있다(사진 = OM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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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태실“을 세계에 개방 하라
고양시에는 조선시대 왕실 선산이 있는 곳이다. 이게 서오릉과 서삼릉이다. 서삼릉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이 되어 있다. 그게 바로 ”태실“이다. 태실은 왕실에서 태어난 아기씨의 태(胎- 난막(卵膜),태반(胎盤),탯줄)를 묻은 곳이다.
태실은 명당을 골라 태를 묻음으로써 아기씨의 건강뿐 아니라 왕실과 나라의 번영을 기원하는 조선 왕실의 독특한 문화다.

↑↑ 고양시 서삼릉에 왕실과 그 가족의 태실 32기가 화강석으로 세워져 있다(사진 = OM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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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조선시대 왕실의 태실이 전국에 분포되어 있었으나 일제강점기인 1929년 모든 태실을 서삼릉으로 옮겨왔다. 54기의 태항아리를 묻고 태지석을 세웠다. 태지석은 오석(烏石)과 화강석으로 구분하였는데, 오석은 22기로 왕, 황제, 황태자의 것이고, 화강석은 32기로 왕실과 그 가족들 것으로 구분되어 있다.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서삼릉 태실의 주인공들(사진 = OM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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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하루에 20명씩 3회만 관람을 할 수 있다. 이래서야 어찌 세계문화유산이라 하겠는가? 내국인도, 외국인도 세계문화유산인 ‘태실’을 모른다. 이제 이를 크게 개방하여 세계인이 독특한 조선시대 왕족의 태실문화를 볼 수 있도록 관광인프라를 구축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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