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중 게재 ⑤】실전(實戰)기자학 - 언론과 기자에 대한 ‘전략적 약화 정책’
재갈물리기, 물 타기 등 다양한 수법 총동원, 정체성 뒤틀림 뚜렷
2026년 03월 03일 [옴부즈맨뉴스]

↑↑ 본지 주필 겸 회장 박철희(사진 = OM뉴스)
ⓒ 옴부즈맨뉴스
필자는 전호(前號)에서 30년 기자경력과 팔순(八旬)의 나이에도 여전히 언론계에 몸담고 있는 현직 ‘평생 언론인’으로서, 오늘의 대한민국 언론현실을 극히 비관적 상황임을 적시한 바 있다.
언론사들은 한결같이 정체성이 와해돼 제대로의 소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으며, 동시에 기자들은 그동안 선배 언론인들이 생명처럼 여겨왔던 ‘기자정신’을 상실함으로써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해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예고했던 대로 이번 호에서는 오늘의 대한민국 언론과 기자들의 상태가 어찌하여 여기에까지 이르게 됐는지를 좀 더 구체적으로 따져 보려고 한다. 전개되는 내용들은 모두가 전적으로 ‘기자적 시각’에 근거한 것임을 밝혀둔다.
1970년대 초입까지만 해도 그럴 듯한 뉴스통신사들이 도처에 산재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합동통신을 비롯하여 동화통신, 시사통신, 경제통신 등등이 그것이다. 방송 쪽에선 국영방송인 KBS와 민영방송으로 MBC, 상업방송위주의 SBS가 3방(放)체제를 구축하고 있었다.
KBS는 정부정책 홍보와 국가재난 방송오로서 소임에 충실했다. MBC는 문화예술부문, SBS는 기업 및 산업, 유통부문 전문방송을 주도하면서 분명한 컬러(빛깔:영역)를 지켰다.
신문 쪽에선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서로 대한민국의 ‘민족지’을 자처하며 군림하는 가운데 한국일보, 경향신문, 후발인 삼성계열의 중앙일보가 뒤를 바짝 추격하는 형국이었다. 그밖에 대한일보, 신아일보, 한겨레신문, 문화일보, 서울신문 등도 주요 일간지로 활동 중이었다. 신문들 역시 나름대로의 특색과 영역이 분명했다. 서울신문의 경우 정부와 지자체의 완전한 기관지 역할을 담당했다.
신문들은 제각각 나름대로 주관이 있었고 또한 자존심과 자긍심이 하늘을 찌를 듯 대단했다. ‘조•중•동’의 위세가 단연 돋보였었다.
한국일보는 당시에 법조, 경찰, 사회부문에서 군계일학(群鷄一鶴)이었다. 경찰 사이드카(car) 비슷한 취재차량을 국내언론사 가운데 처음으로 도입한 곳이 한국일보였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당시 H 소형자동차 100여대가 현장을 누비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돌았다. 참으로 부러웠던 기억이다. 다른 한편으론 대한민국 미인선발대회의 창설언론사이기도 했다. 대한민국의 미녀들이라면 누구나 흠모하는 1순위 신문사가 한국일보가 아니었나 싶다.
경향신문은 유일한 종합일간지였다. 점심시간이 임박할 무렵이면 수 많은 독자들이 경향신문을 기다렸다. 학비(學費)라도 벌어보겠다는 청소년 어린 학생들이 왼쪽 겨드랑이에 신문더미를 끼고 명동, 서울역, 시청 앞, 버스정류장 인근 등을 내달리며 “오늘의 석간 경향신문요!!” “오늘의 특종 00!!”하며 외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문화일보의 경우는 많은 문인(文人)들의 등용문이었다. 생생한 문화계 소식도 폭넓게 입수할 수 있었다. 전문지로는 필자가 몸담았던 경제신문 등이 대표적이다. 경제뉴스와 함께 경제관련 지식함양에 크게 기여했다고 자평(自評)한다. 증권과 부동산 분야에서 탁월한 역량을 발휘했다.
이런 와중에 유신이라는 명분아래 충격적 언론 통폐합이 단행됐다. 언론의 낡은 제도를 고쳐 새로운 시대를 열겠다는 취지였다. 이로인해 소위 ‘중앙언론’(지방언론과 구별)이라는 신문, 통신들 가운데 상당수가 퇴출(退出)됐다. 지방언론은 더욱 그 정도가 심각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통신사는 다 없어지면서 ‘연합통신’ 한 곳으로 통신보도 창구가 단일화 됐다. 확 바뀐 것이다. 퇴출명단에서는 다행히 면피(免避)한 언론사들의 지각변동이 극심했다. 명성을 잃고 스스로 도태하는 가하면 가세(家勢)가 기울어 셋방 신세로 전락(轉落)하기도 했다.
반면 연합통신은 1993년 9월 주식회사로 모습을 바꾸면서 30년 훨씬 넘는 세월 사이에 TV, 라디오, DMB 시장을 완벽하게 장악, 절대적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 대한민국 대부분의 뉴스가 이 통신사 혼자 공급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이런 구도 때문인지 국영방송이라는 KBS의 경우 메인 뉴스 시간대인 정오(12시)와 저녁 9시뉴스 시간대의 뉴스방영 시간이 아주 짧아진 느낌이 든다. 필자만 그렇게 착각하고 있나?!
여하튼 몇 가지 핵심 뉴스의 ‘인덱스’ 정도만 알려주고 뉴스 시간이 끝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KBS하면 대한민국의 대표방송 아니었었나? 그동안 지켜왔던 지위와 명예, 그리고 자존심은 어디로 출가(出嫁:팔아 버리다)보낸는 지 그저 안타깝다.
나머지 방송들도 형편은 비슷하다. YTN뉴스는 하루 종일 뉴스와 정보, 세계소식을 반복적으로 방영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YTN유튜브방송 구독자가 500만 명에 달했다는 뉴스가 한참 전 일이었음을 감안하면 모르긴 해도 지금은 1,000만 명을 훨씬 넘어섰을 공산이 크다.
전호(前號)에서 거론했던 유신이후의 ‣ 개인적 취재금지 제한을 위한 공보실 신설운영과 병행하여 정부 차원에서 실시했던 ‘기자 관리 시스템’이 있다. 문공부(당시)장관 명의로 된 프레스 카드(Press cad)이다. 필자 기억으론 대략 2,400여장이 발급됐던 것으로 알고 있다. 카드 내용은 대략 이러했다.
「기자증. 이 증명서를 소지한 기자에게는 취재에 협조해주기 바랍니다. 장관직인」이라는 문구가 선명했다. 프레스 카드는 중앙부처에 우호적이거나 명망 있는 언론사 소속 기자 등에 제한적으로 발급됐었다. 이른 바 사이비언론과 기자를 속아내겠다는 속셈이 저변에 깔려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이와 동시에 언론계 변화를 가속화시킨 빼놓을 수 없는 또 다른 핵심 동인(動因) 몇 가지가 더 있다. 연속적으로 이어진 자연적 추세와 원인들이라고 우선 생각해 두고 넘어가자.
그 첫째는 1980년의 TV칼라방영 개시다. 흑백TV방영에서 칼라TV방영으로의 전환은 온 세상을 180도 바꿔 놨다. 문화뿐만 아니라 화장품, 의류, 조명, 실내장식 등 국민 생활과 직결되는 유통시장의 소비패턴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이와 함께 TV시청률이 가파르게 뛰어 오르는가하면, 광고시장도 판도가 TV쪽으로 완전히 기울어졌다. 종이 신문의 구독률은 급락했다.
두 번째는 과학기술의 급속적인 발달 부분이다. 특히 전자기술의 급진적 발달이 기존 언론 형태의 궤멸과 직결됐다.
1995년 3월, 정부는 케이블 TV방송사를 지정했다. 언론의 대변화를 예고하는 시그럴이었다. 2021년 1월 방송통신위원회는 방송시장 활성화 정책방안을 발표하면서 ‘1인 방송’의 문을 열어놨다. 케이블방송 개막은 경이적이었다.
세계최초의 케이블UHD 방송이었는데 UHD는 기존 HD보다 선명도와 실감도, 음질이 4배 이상 높고 깨끗한 최고화질의 방송기술이었다. 세계 최고의 상용서비스가 가능하다고 했다.
세 번째는 국가경제발전에 따른 국민의 삶이 눈에 띄게 풍요로워졌다는 것이다. 삶의 풍유는 국민적 취향변화를 불러왔다. 취향변화 가운데 대표적인 것 가운데 하나가 ‘스포츠’부문이다.
예전엔 축구 정도에 그치던 스포츠 종목이 국민들의 취향변화와 요구에 따라 야구, 농구 등 구기(球技) 종목 이외에 각종 스포츠 종목에 참관자들이 몰려들었다. 매니아 단계를 넘어서 각종 스포츠 경기장마다 관객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게 됐다.
이러한 다양한 요소들로 말미암아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 변화는 국민들이 신문에 대한 관심이 현저히 낮아졌고, 특히 그동안 여론을 주도했던 정통언론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약화됐다는 것이다.
방송 쪽도 비슷했다. 정부정책이나 정치판세 등에 대한 관심 보다는 연속방송이나 스포츠 중계발송 등에 국민들의 관심이 모아지다 보니 정부당국이나 정치권 등에서는 언론계에 써야 할 부담이 상대적으로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자! 그렇다면 상기(上記)한 여러 가지 정책과 시대성 등의 변화 과정 등을 참고로 필자가 전호(前號)에서 제기했던 오늘의 언론현실에 대한 ‘부정적 시각’의 근거는 과연 무엇이었을 지를 짚어내야 할 때가 됐다.
근대 경제학의 창시자인 영국의 경제학자 아담 스미스는 그의 저서 국부론(國富論)에서 시장경제는 거대한 ‘보이지 않는 손' (invisible hand)에 의해 움직인다고 주장한 바 있다. 혹여, 대한민국 언론계의 급격한 변화의 결정적 동기와 원인이 ’보이지 않는 어떤 손(세력)‘에 의해 의도적으로 계획됐던 것은 아닐까하는 의구심은 절대적으로 잘 못된 생각일까?! 꼭 그렇지는 않다.
명백한 증거나 정부당국의 공식 발표 등이 뒷받침되지는 않지만 “어떤 세력에 의한 의도적 언론약화 계획의 일환이었을 수도 있다”는 정황만큼은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앞부분에서 필자가 장황하게 열거한 정부의 다양한 언론정책마련과 서둘러진 집행 과정 등을 세밀히 들여다보면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들이 의외로 많다. 시셋 말로 ‘냄새’가 난다.
언론통폐합, 정부기관 내에서의 독자적 취재 제한, 기자실 설치 및 풀(pool)기사 자료 제공, 오보(誤報)에 대한 중징계 및 민• 형사상 책임 강화, 유튜브 방송의 활성화 및 1인 방송 허용, 통신사 단일화로 인한 뉴스공급의 편중적 과점화(寡占化), 방송패널들의 좌우 또는 찬반진영 출연원칙 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언론계의 가파른 상황 변화를 과연 어떻게 봐야할까?
단순히 시대가 요청한 어쩔 수 없는 조치이자 정책 결정이었다고 받아들여도 무방한 것일까? 이에 대한 답을 구하는 건 독자 여러분 각자의 몫이라고 생각된다.
다만 필자의 입장에서는 답을 구해보려고 애쓰는 가운데 몇 가지 떠오른 단어들이 있다. 끈임 없이 진행된 언론 및 기자 재갈물리기와 학습 그리고 회유, 입틀막, 갈라치기(정통언론과 신흥 강성언론의 세력 다툼 유도), 물타기 등이었다.
결국 대한민국 언론은 부정적 의미로서의 무색무취(無色無臭)한 존재로 전락해버린 게 아닌가 싶다. 안타깝다.
<예고> 다음호에는 ‘대한민국 언론 정상화의 길에 대한 고찰’을 정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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