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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경찰 성폭력 고발했지만…`꽃뱀` 몰린 여경의 눈물

김형오박사 2018. 3. 12. 13:52

경남경찰 성폭력 고발했지만…`꽃뱀` 몰린 여경의 눈물

성추행 당한 후배 도왔더니 돌아온 건 "떠나라"
'억울함 호소' 외면한 경찰…9개월 만에 진상조사
시민단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벌해야..”

2018년 03월 12일 [옴부즈맨뉴스] 

 

↑↑ 직원 간의 성추행을 조직적으로 위장한 경남지방경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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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옴부즈맨뉴스] 강령비 취재본부장 = '미투(Me too)' 운동이 우리 사회에 준 충격 중 하나는 '배신감'이었다. 

법조계, 예술계, 정치권으로 확산하는 성범죄 폭로 물결 속에서 국민들은 '설마' 했거나, 예기치 못한 유명인사의 어두운 민낯에 경악했다.

기록적인 한파가 닥쳤던 지난 1월, 자신을 배신한 경찰서의 차가운 철문 앞에 홀로 선 여경이 있었다. 

동료 경찰에게 성폭력을 당한 후배 여경을 도왔다가 '꽃뱀 여경'으로 몰렸고 경찰 조직에 손가락질을 받아야만 했던 임희경 경위(46)가 바로 당사자다.

▲ 경찰 '성폭력' 고발했지만…결과는 '꽃뱀 여경'

"범죄를 처벌하는 것, 경찰의 당연한 임무 아닌가요?"

경남 김해서부경찰서 산하 한 지구대에서 근무하던 19년 차 임 경위의 경찰 인생은 지난해 4월 후배 여경 A씨의 '고백'과 함께 꼬이기 시작했다.

갓 경찰서에 부임한 신임 여경이었던 A씨는 임 경위에게 "6개월 동안 팀 멘토인 김모 경사(46)와 함께 근무하면서 최근 한 달간 잦은 성추행과 성희롱을 당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임 경위에 따르면 A씨의 멘토 역할을 했던 김 경사는 A씨에게 남자친구와의 성관계를 묻거나 '너 자는 모습이 예쁘다, 너 같은 체형이 좋다'는 등 성희롱을 일삼았다. 

소심한 성격의 A씨가 저항을 하지 못하자 김 경사의 행동은 대범해졌다. 손을 들어 A씨의 뺨을 만지는 등 신체접촉까지 했다.

참다못한 A씨는 고참 선배인 임 경위에게 피해를 알렸고, 임 경위는 A씨가 경찰 내부에 김 경사의 성추행·성희롱 사실을 고발할 수 있도록 도왔다. 감찰 결과 '상습 성희롱'으로 감봉 1개월 처분을 받은 김 경사는 다른 경찰서로 전보됐다.

하지만 상황은 이상하게 돌아갔다. 지구대장 정모 경감은 돌연 "A씨가 더 좋은 부서로 가려고 작전 짠 게 아니냐"고 의심하면서 "너(임 경위) 때문에 김 경사를 보호해주지 못했다"고 가해자를 두둔하기 시작했다.

임 경위는 "범죄를 인지하면 처벌하는 게 경찰의 당연한 임무가 아니냐"고 반문하면서 "어떻게 성 비위 피해자를 도운 사람을 질책하고 가해자를 감싸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상황은 악화일로로 치달았다. 임 경위는 "지구대장은 '미운털'이 박힌 저를 다른 경찰들이 보는 앞에서 공개적으로 비난하거나 무시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앙심을 품은 김 경사도 '임 경위가 고의로 성희롱 사건을 조작했다'는 말을 퍼뜨리면서 성폭력 피해자의 조력자인 저의 신분을 경찰 내부 메신저에 공개했다"고 주장했다.

어느새 임 경위는 성희롱 사건을 조작해 경찰서 이미지를 흐리고 동료 경찰을 억압한 '꽃뱀 여경'으로 둔갑됐다.

끝이 아니었다. 김 경사는 임 경위가 저지른 업무 과실을 부풀려 검찰에 '직무유기' 혐의로 고소까지 했다. 결국 '혐의없음'으로 종결됐지만 임 경위는 "꽃뱀이라는 낙인이 찍힌 저는 15만 경찰 조직으로부터 철저히 배제되고 말았다"고 울먹였다.

임 경위는 자신을 의도적으로 비난하고 '꽃뱀 여경'이라는 허위사실을 유포한 지구대장과 김 경사에 대한 내부 감찰을 요구했지만, 경남지방경찰청과 김해서부경찰서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결국 후배 여경의 성폭력 피해를 도왔던 임 경위에게 돌아온 것은 '다른 경찰서로 떠나라'는 '징계'였다.

↑↑ 조작된 직원 여론조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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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14일 경찰 내부 메신저에 올라 온 임희경 경위에 대한 '직원 여론 보고서'. 임 경위는 이 '세평'이 조작됐다며 문제제기했다.

▲ 경찰, 9개월 외면하다가…1인 시위에야 '감찰'

"누구도 저를 도와주지 않았어요. 제가 갈 곳은 정신병원밖에 없었습니다."

임 경위가 경찰 조직의 따돌림과 손가락질을 받는 동안 도움을 받을 곳은 없었다. 그는 "알고 있는 검사, 법률구조공단, 성폭행상담소, 지인 경찰을 찾아다녔지만 누구도 뚜렷한 답을 주지 못했다"면서 "할 수 있는 것은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 펑펑 울며 하소연하는 것뿐"이었다고 말했다.

전보된 경찰서에서 근무하면서도 계속해서 '감찰'을 요구했지만 단 한 번도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0년 가까이 몸담았던 경찰 조직에 좌절감마저 들었다. 버림받은 조직 속으로 출근하면서 아침마다 분노가 차올라 숨쉬기조차 버거웠다. 끝내 기억상실증 증세까지 나타나기 시작했다.

9개월간 이어진 고통을 감수하던 임 경위는 지난 1월8일, 김해서부경찰서 정문 앞에 섰다. 몸 앞뒤에 사연을 빼곡히 적은 피켓을 두른 임 경위는 경찰의 감찰을 요구하는 1인 시위를 펼쳤다.

임 경위는 "국정농단에 맞서 시민들이 촛불집회를 하면서 거리로 나와 '이게 나라냐'는 팻말을 들고 시위를 하는 모습을 보고 '이게 경찰이냐'는 생각이 들었다"며 "나도 이 경찰조직을 바로 잡아야겠다는 생각에 용기를 냈다"고 1인 시위에 나선 계기를 설명했다.

효과는 곧바로 나타났다. 1인 시위 첫날 만에 경찰청 본청에서 진상조사단이 경남지방경찰청으로 파견됐다. 

1월9일부터 한 달 동안 경남지방경찰청과 김해서부경찰서를 상대로 전방위 조사를 벌인 경찰청은 2월14일 경찰 내부망에 '감찰 보고서'를 발표했다.

임 경위가 주장한 피해가 일부 사실로 밝혀졌고, 이에 따라 경찰관 7명을 본청 징계위원회에 회부해 징계절차를 밟겠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임 경위는 이 과정에서 경찰이 또 다른 '수'를 썼다고 주장했다. 경찰청이 '감찰 보고서'를 발표하고 불과 3시간 만에 경찰 내부 메신저를 통해 자신을 험담하는 '허위 직원 여론 보고서'가 올라왔다는 것이다.

'김해중부서 직원여론' 보고서에는 임 경위의 요구로 진행된 감찰에 대해 '임 경위 때문에 경찰 이미지만 나빠졌다' '임 경위는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반성 없이 자기주장만 과하게 한다'는 비난 여론이 명시됐다.

임 경위는 "본청에서 감찰보고서가 발표되고 관련자가 징계위에 회부되자 경남청 감찰관 B경위가 김해중부경찰서 C 부청문관에게 지시해 '허위 세평' 보고서를 만들도록 했다"며 "직원의 평판이 감찰에서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한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라고 분개했다.

서울 경찰청 관계자는 "임 경위의 요구에 따라 진상조사를 모두 마쳤다"며 "관련자 7명을 징계위원회에 회부해 이번 달 말까지 결과를 발표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세평 보고서가 조작됐다는 주장이 있지만 이는 별도로 수사 중이기 때문에 진위여부를 알려줄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또 이 관계자는 "이번 사안을 경찰청 차원에서 매우 엄중하게 여기고 있다"면서도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징계위에 회부된 7명이 누구인지, 임 경위가 입은 피해가 사실인지는 확인해줄 수 없다"고 전했다.

경남청도 지난 1월 전까지 임 경위의 공개 감찰 요구를 외면했던 사실을 인정했다. 경남청 관계자는 "임 경위의 1인 시위 이후인 1월에서야 진상조사를 시작했다가 본청으로 관련 자료를 넘겼다"면서 "세평 보고서 조작 여부는 수사 중이기 때문에 자세한 사항을 대답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임 경위는 명예훼손·허위공문서작성·직권남용 등 혐의로 B 감찰관과 C 부청문관을 고소한 상태다.

↑↑ 지난 1월 경남 김해서부경찰서 앞에서 임희경 경위가 1인 시위를 하며 진상조사를 촉구하고 있다.(사진출처 = © News1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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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 괴롭힌 곳으로 돌아갑니다…도망치지 마세요"

전문가들은 "임 경위의 사례는 권력에 의한 폭력이 우리 사회 곳곳에 뿌리박혀있다는 하나의 증거"라고 분석하면서 "조직을 위해 개인이 희생해야 한다는 집단의식에서 자유로운 영역은 어디에도 없다"고 비판했다.

이상화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실장은 "한국 미투 운동이 서지현 검사의 폭로로 시작된 점에서 알 수 있듯이 가장 정의에 가까워야 할 사법조직조차 남성 위주 위계질서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며 "'권력에 의한 폭력'이라는 세포가 사회 전체에 스며있다"고 봤다.

기억상실증 등 심각한 정신 피해로 3주간 병가를 냈던 임 경위는 지난 9일 다시 김해서부경찰서로 발령을 받았다.

임 경위는 "솔직히 말하면 이번 감찰과 징계로 내게 박혔던 '미운털'이 사라질 것이라고 믿지는 않는다"면서도 그와 같이 직장과 조직에서 2차 가해를 입는 여성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저는 저를 괴롭히는 직장으로 돌아갑니다. 생살을 찢는 고통이지만, 저는 그래도 갈 겁니다. 당신들도 피하지 마세요.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닙니다. 도망치지 말고, 꿋꿋하게 서길 바랍니다."

한편, 이 기사를 접한 시민옴부즈맨공동체(상임대표 김형오)는 “위계에 의한 조직적 폭력이 아직도 공공기관에서 횡횡하고 있다”면서 “경찰청은 이번 사건에 대하여 경남지방경찰청장과 산하 경찰서장 등 관련자 모두를 엄벌에 처해야 한다”라고 흥분했다. 또 “성의 문제는 성역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전제하며 “경찰청의 오랜 적폐인 제식구 감싸기 관행이 이 사건을 계기로 뿌리 뽑아져야 한다”고 일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