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노인의 보금자리
파주시 교하읍 야당리 일대가 신도시로 개발되면서 택지개발지역 내에서 주택을 소유했거나, 농사를 짓거나, 자영업 등을 했던 주민들에게 생활대책용지 공급대상 안의 범위에서 택지를 조성원가에 보급하는 이주자 대책이 시행되었다.
이에 따른 대상은 고시 이전에 주민등록과 소유권이 동시에 되어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못을 박고 있다. 소위 삶의 터전을 잃은 원주민에게 당연한 권리차원이 아닌 시혜적 차원에서 이주자대책을 수립하여 실정법상 이를 제도적으로 수용하여 실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업고시 10년 이전부터 딸이 소유한 토지에 열다섯 평 정도의 집을 건축하여 주민등록만 이전 한 채 사시던 75세 할머니가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르시고 혼자 계속 사셨다. 그러나 사시는 지역 일대가 택지개발이 된다는 소문을 듣고 주택에 대한 소유권이전을 부랴부랴 서둘렀으나 결국은 사업고시 열흘 이후에야 등기를 겨우 마칠 수 있었다.
따라서 주택공사에서는 이주자 대책 대상자에서 결국 할머니를 제외하고 말았다. 이에 할머니는 파주시청과 주택공사를 여러 번 찾아가 사정을 했으나 소유권 이전이 열흘 넘겨서 할머니에게 지급되는 택지를 도저히 공급할 수 없다는 사실만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하도 답답한 심정에 국민고충처리위원회에 민원을 제기하였지만, 역시 법에서 그렇게 되어 있으니 어쩔 수 없다는 답변만 들었을 뿐이라는 것이었다.
어느 날 할머니는 우리 단체를 노크하셔서 나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셔서 모두 듣고 보니 이 문제는 그리 쉽게 풀릴 것이 아니었다.
나는 이 문제를 풀기 위해 관련법을 여러 번 검토한 결과 이 법의 제정취지와 이주자 대책의 의미를 법제처와 건설부에 질의하면서부터 하나씩 실마리를 찾아 나섰다.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 즉 공토법의 제정취지를 보면 공공복리의 증진과 재산권의 적정한 보호를 도모함을 목적으로 되어 있고, 이 법에서 정한 이주대책대상자의 정의는 공익사업의 시행으로 말미암아 주거용 건축물을 제공함에 따라 생활의 근거를 상실하게 되는 자로 규정되어 있는 것을 알았다.
무엇보다 이 법에서 중요한 것은 적절한 보상과 시혜적이고 보은으로 사업에 협조한 주택을 가진 사람에게 베풀어 위안을 주는 정책임을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 아무리 눈을 크게 뜨고 보아도 대상자의 기준을 사업고시 이전에 소유권이 이전되어 있어야 하고, 주민등록이 되어 있어야 한다는 규정은 어디에도 찾을 길이 없었다. 이 제한은 주택공사에서 투기를 예방할 목적으로 정한 업무방침에 불과한 것을 비로소 알아낸 것이 큰 수확이었다. 업무방침을 가지고 수십 년을 살아온 사람에게 사실상 건물 소유자였음에도 사업인정고시 이후에 소유권을 이전했다는 이유로 이주자대책 대상자에서 제외한다는 것은 형평성이 모자란 행정이 아닐 수 없다는 결론을 드디어 내렸다. 그래서 이전 소유자나 현 소유자 둘 중 한 사람에게는 이 혜택을 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나는 결국 행정소송을 하기로 하고, 우리 단체의 자문변호사에게 무료변론을 간청하였더니 흔쾌히 수락을 해 주셨다.
근 2년 동안의 지루한 공방 끝에 1·2심 모두 생각처럼 승소를 했다. 주택공사에서는 판례로 확정될 것이 두려워 대법원 상소를 포기하는 바람에 결국에 할머니가 이기는 쾌거가 되었다. 그리고 우리 단체가 할머니에게 승소 판결문을 전하자, 야윈 할머니의 두 뺨을 타고 이슬이 소리 없이 흘러내렸다.
“그놈들이 이 늙은이를 너무 얕보고 말을 함부로 해, 그래서 끝까지 싸우려 했어.”
나는 할머니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언제부터인가 주택공사 직원들의 거만과 불친절 그리고 권위를 가지고 집과 전답을 빼앗긴 자들에게 제왕처럼 군림해 왔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머물렀다.
할머니 사건으로 우리 단체 자문변호사와 같이 고양법원을 오가면서 법원 주변에서 많은 시위자를 보았다. 이들은 사연도 가지가지였다. 얼마나 억울하고 호소할 데가 없으면 거리에서 저렇게 호된 고생을 하나 싶었다. 세상에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저 무명의 힘없는 사람들의 고통과 한과 억울함은 누가 풀어줄까?
그렇지만, 이토록 재판에서 이겨 어려움에 부닥친 사람들이 기뻐하는 걸 보는 것 자체가 내 보람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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